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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생활문화

외상도 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던 곳, 동네 구멍가게는 왜 사라졌을까?

by bnfthetisah 2026. 8. 13.

지금은 집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도 24시간 불이 켜진 편의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음료와 과자뿐 아니라 도시락과 삼각김밥, 택배 접수, 현금인출, 각종 공과금 납부까지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고,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면 생수 한 묶음부터 쌀과 세제까지 집 앞으로 배달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한 유통망이 자리 잡기 전에는 주택가 골목마다 작은 가게 하나쯤이 있었다. 간판에는 ‘○○상회’, ‘○○슈퍼’, ‘식품·잡화’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이런 가게를 흔히 ‘구멍가게’라고 불렀다. 가게 안에는 라면과 과자, 통조림, 세제, 휴지 같은 생활용품이 천장 가까이까지 빼곡하게 쌓여 있었고, 입구 근처 냉동고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손에 동전을 꼭 쥐고 가게로 달려가 사탕 하나와 불량식품 몇 개를 골랐고, 어른들은 저녁을 준비하다 간장이 떨어지거나 두부가 필요하면 슬리퍼를 신고 잠깐 들렀다. 현금이 없으면 “아주머니, 다음에 드릴게요”라는 말 한마디로 외상장부에 이름을 적어두기도 했다. 가격표와 결제 시스템보다 사람 사이의 얼굴과 신뢰가 먼저였던 가게였다. 그러나 지금 오래된 주택가를 걸어보면 구멍가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있더라도 손님이 많지 않은 오래된 가게로 남아 있거나, 그 자리를 편의점과 카페, 부동산 중개업소가 대신하고 있다. 한때 동네 생활의 중심이었던 구멍가게는 왜 우리 골목에서 하나둘 사라지게 된 것일까?

 

외상도 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던 곳, 동네 구멍가게는 왜 사라졌을까?
외상도 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던 곳, 동네 구멍가게는 왜 사라졌을까?

 

냉장고와 창고를 대신했던 동네의 작은 생활백화점

구멍가게가 필요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과거의 장보기 방식을 떠올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일주일에 한 번 대형마트에서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거나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 집에 쌓아둘 수 있지만, 과거에는 가정마다 식품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지 않았다. 냉장고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신선식품을 오래 저장하기 어려웠고, 냉장고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대용량 제품을 여러 개 보관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를 가진 가정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시장이나 대형 상점에서 무거운 물건을 한꺼번에 사 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조금씩 구매했고, 그 역할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담당한 것이 구멍가게였다. 아침에 라면이 떨어졌으면 한 봉지를 사고, 저녁을 준비하다 소금이 부족하면 작은 봉지 하나를 샀다. 아이가 학교 준비물로 풀이나 공책을 갑자기 필요로 하면 문방구가 멀 경우 구멍가게에서 해결하기도 했다. 음료수와 과자, 계란, 두부, 콩나물, 성냥, 양초, 건전지, 비누, 빨랫비누, 치약처럼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물건들이 작은 가게 안에 모두 들어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구멍가게는 규모는 작았지만 동네 주민에게 필요한 물건을 최대한 다양하게 갖추어야 했다.

 

가게의 진열방식도 지금의 편의점과는 크게 달랐다. 상품이 회사와 품목별로 정돈되어 있기보다 빈 공간이 있는 곳마다 물건이 놓였다. 천장에는 휴지와 생활용품이 매달려 있고, 계산대 주변에는 사탕과 껌, 담배가 빼곡했다. 과자는 종이상자째 바닥에 놓여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우유와 요구르트, 병음료가 섞여 있었다. 어떤 물건은 가격표조차 붙어 있지 않아 주인에게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어야 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큰 불편이 아니었다. 주인은 손님이 무엇을 자주 사는지 알고 있었고,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다음에 물건을 받을 때 가져다놓기도 했다. “아주머니, 다음에 서울우유 들어오면 두 개만 남겨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다음 방문 때 계산대 뒤에서 우유를 꺼내주는 식이었다.

 

구멍가게의 가장 독특한 문화 가운데 하나는 ‘외상’이었다. 지금의 매장에서 돈이나 카드 없이 상품을 가져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작은 동네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계산대 근처에는 작은 공책이 있었고, 어느 집에서 무엇을 얼마어치 가져갔는지가 적혀 있었다. 월급날이나 돈이 생겼을 때 한꺼번에 갚는 경우도 있었다. 주인은 손님의 이름뿐 아니라 가족관계와 집 위치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나 본인 인증 절차가 없어도 일종의 동네 신용거래가 이루어졌다. 물론 외상값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외상장부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구멍가게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안에서 운영되는 가게였음을 보여준다.

 

어린이에게 구멍가게는 더욱 특별한 공간이었다. 용돈으로 큰 물건을 살 수는 없어도 동전 몇 개만 있으면 사탕과 껌, 작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었다. 지금처럼 포장된 제품만 판매한 것도 아니다. 유리병이나 통 안에 들어 있는 사탕을 개수대로 팔기도 했고, 한 봉지를 뜯어 낱개로 판매하는 상품도 있었다. “백 원어치 주세요”라고 하면 주인이 작은 봉지에 사탕 몇 개를 담아주기도 했다. 여름이면 냉동고 문을 열고 어떤 아이스크림을 살지 한참 고민했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과자를 하나씩 골랐다. 학교가 끝난 뒤 아이들이 모이고, 저녁이면 장을 보러 나온 어른들이 들르면서 구멍가게는 자연스럽게 동네 소식이 오가는 장소가 됐다. 어느 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옆집 아이가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지, 골목 공사가 언제 시작되는지를 가게 주인이 가장 먼저 알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구멍가게는 물건을 파는 곳이면서 동네의 작은 정보센터이기도 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등장하자 구멍가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멍가게의 위기는 사람들이 과자나 라면을 먹지 않게 되면서 찾아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비량은 늘어났지만 물건을 사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경제성장과 함께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늘고 대형 유통업체가 성장하면서 소비자는 가까운 작은 가게에서 조금씩 사는 대신 넓은 매장에서 한꺼번에 구매하기 시작했다. 대형 슈퍼마켓과 할인점은 구멍가게보다 훨씬 많은 상품을 갖추고 있었고, 대량구매와 대규모 유통망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같은 라면이나 세제를 사더라도 한두 개를 구매하는 것보다 묶음상품으로 사면 가격이 저렴했다. 냉장고가 커지고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는 더 이상 매일 동네 가게에 갈 필요가 없었다. 주말에 차를 타고 대형마트를 방문해 일주일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카트에 가득 담아오는 방식이 새로운 장보기 문화가 되었다.

 

그보다 구멍가게에 더욱 직접적인 경쟁자가 된 것은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은 구멍가게와 마찬가지로 주택가 가까이에 자리 잡았지만 운영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밝은 조명과 통일된 간판, 정해진 상품배치와 가격표, 냉장·냉동시설을 갖추었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이용할 수 있었다. 소비자는 어느 지역의 같은 브랜드 편의점에 들어가도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다.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쉬웠고, 가격도 명확했다. 새로운 음료나 과자가 출시되면 본사의 유통망을 통해 빠르게 매장에 들어왔다. 구멍가게는 주인이 직접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오거나 영업사원에게 주문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본사가 상품 선정과 물류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결제 방식의 변화도 컸다. 과거 구멍가게에서는 현금거래가 일반적이었다. 외상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카드 사용이 일상화되자 소액까지 카드로 결제하기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편의점에서는 현금과 신용카드뿐 아니라 교통카드, 모바일결제까지 사용할 수 있었고, 현금인출과 택배, 공과금 납부 같은 서비스까지 추가됐다. 어느 순간 편의점은 단순히 과자와 음료를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라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구멍가게 주인 한 사람이 이러한 시스템을 모두 갖추기는 어려웠다.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집에서 가까운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점점 가격과 선택의 폭, 위생과 편리성이 중요해졌다. 작은 구멍가게는 공간이 좁아 다양한 제품을 갖추기 어려웠고, 회전이 느린 상품은 오래 진열돼 포장이 낡기도 했다. 대형 유통업체는 유통기한과 재고를 전산으로 관리하고 정기적인 판촉행사를 진행했다. ‘1+1’, ‘2+1’ 같은 행사에 익숙해진 소비자에게 정가로 한 개씩 판매하는 작은 가게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의 삶도 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가족이 함께 가게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실상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손님을 기다려도 실제 수익은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휴가를 가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주인이 아프면 영업 자체가 어려웠다. 젊은 세대가 부모의 가게를 물려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운영된 가게가 주인의 은퇴와 동시에 문을 닫는 경우도 늘어났다. 건물 임대료가 상승한 지역에서는 적은 마진으로 가게를 유지하기 더욱 어려웠다. 결국 대형마트와 편의점이라는 외부 경쟁뿐 아니라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임대료와 노동시간 같은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동네 구멍가게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구멍가게가 사라진 자리에서 함께 사라진 동네의 관계

구멍가게가 사라진 뒤 우리는 훨씬 편리한 소비생활을 하게 됐다. 필요한 물건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고, 조금 더 저렴하게 사고 싶다면 대형마트를 찾는다. 무거운 생수나 쌀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집 앞에 도착한다. 원하는 상품이 가까운 매장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게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가격을 비교하고 결제까지 마치면 된다. 물건을 사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그런데 구멍가게와 편의점 사이에는 단순히 상품 종류와 가격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구멍가게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알고 있었다. 아이가 혼자 물건을 사러 가면 “엄마가 이거 사 오라고 했어?”라고 묻기도 했고, 늦은 밤 집에 돌아가는 아이를 보면 “빨리 집에 가라”며 한마디 해주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게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전화해놓으면 주인이 미리 준비해주기도 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단골이 있으면 “그 집 요즘 무슨 일 있나?” 하고 궁금해했다. 가게는 사적인 공간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익명의 공간도 아니었다.

 

지금의 편의점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님은 상품의 바코드를 찍고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한 뒤 바로 나간다. 직원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구매를 끝낼 수도 있고, 무인 계산대를 이용하면 사람을 전혀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소비자로서는 편하고 빠르다. 하지만 가게에 가면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을 만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생활은 줄어들었다. 외상장부처럼 개인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거래도 거의 사라졌다. 소비가 관계의 영역에서 시스템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구멍가게를 무조건 낭만적으로 기억할 필요는 없다. 물건의 가격이 지금보다 불투명한 경우도 있었고, 위생이나 보관환경이 좋지 않은 가게도 있었다. 외상값 문제로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도 있었으며,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켜야 하는 가족의 노동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많지 않았고, 밤늦게 물건이 필요하면 이미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성장한 데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편리하고 안정적인 소비환경을 원했다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그곳에서 물건만 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용돈을 처음 사용해보는 장소였고, 어른에게는 급하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동네 어르신에게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고, 주인에게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는 자리였다. 어린아이가 백 원짜리 사탕을 사러 오던 모습을 보다가 그 아이가 교복을 입고,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 자신의 아이 손을 잡고 다시 가게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구멍가게에서 팔던 물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라면도 여전히 있고,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있으며, 세제와 휴지도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상품을 더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 사라진 것은 그 상품들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이름 대신 회원번호를 사용하고, 외상장부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주인의 추천 대신 온라인 리뷰와 알고리즘을 참고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래된 동네를 걷다 보면 가끔 옛 구멍가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빛이 바랜 음료수 회사 간판이 벽에 남아 있고, 유리문에는 오래된 스티커가 붙어 있다. 가게 앞 평상에는 주인이 앉아 있고, 진열대에는 몇 종류의 과자와 라면만 남아 있기도 한다. 주변에는 이미 대형 편의점이 들어서 있지만 오랜 단골 몇 명이 여전히 그 가게를 찾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구멍가게가 단순히 경쟁에서 밀려난 낡은 상점이라는 생각만 들지는 않는다.

 

한때 골목마다 있던 구멍가게는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생활 인프라였다. 자동차도 온라인 쇼핑도 없던 시절, 집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큰 편리함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넓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국의 상품을 주문하고 해외에 있는 사람과도 즉시 연락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골목의 구멍가게가 사라진 것은 단순히 오래된 소매점 하나가 문을 닫은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던 생활방식 하나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가게 앞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아이들, 계산대 옆 외상장부에 적힌 동네 사람들의 이름, “다음에 돈 생기면 줘”라고 말하던 주인의 목소리. 당시에는 너무 평범해서 기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풍경들이 이제는 쉽게 다시 볼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어쩌면 구멍가게라는 이름이 정겨운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크고 화려한 상점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는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과 관계가 함께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