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라져 가는 생활문화

찬바람 막아주던 작은 종이, 겨울마다 붙이던 문풍지는 왜 사라졌을까?

by bnfthetisah 2026. 9. 27.

예전 겨울철 집 안 풍경을 떠올리면 유리창 가장자리나 방문 틈에 길게 붙어 있던 종이띠가 생각난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문풍지가 살짝 들썩거리며 바스락거렸고, 창문 틈에서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어른들은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면 창문과 문짝 사이를 살피며 틈이 있는 곳에 문풍지를 새로 붙였다. 오늘날처럼 ‘단열테이프’나 ‘문풍지 스펀지’ 같은 제품을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종이나 천 조각을 직접 잘라 풀로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국립국어원은 문풍지를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짝 가장자리를 빙 둘러 붙여 놓은 종이’라고 설명한다. 이름 그대로 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막는 생활도구였던 것이다. 지금은 새 아파트나 주택에서 겨울마다 문풍지를 붙이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창호가 훨씬 정밀해졌고, 이중창과 복층유리, 각종 단열재가 보편화되면서 문틈으로 직접 찬바람이 들어오는 일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풍지는 왜 한때 겨울마다 꼭 붙여야 하는 물건이었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 없이도 겨울을 날 수 있게 된 것일까?

찬바람 막아주던 작은 종이, 겨울마다 붙이던 문풍지는 왜 사라졌을까?

웃풍이 심한 집에서는 문풍지가 작은 난방장치였다

과거 주택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온돌방은 아랫목이 뜨겁게 데워질 정도로 따뜻할 수 있었지만, 방 전체가 고르게 따뜻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문과 창의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 이른바 ‘웃풍’ 때문에 윗목은 유난히 차가운 경우가 많았다. 불을 아무리 세게 때도 창문과 방문 사이로 찬 공기가 계속 들어오면 실내 온기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난방을 더 세게 하는 것만큼이나 틈새를 막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통적인 한옥의 문과 창은 목재틀에 창호지를 바른 형태가 많았다. 종이는 빛을 부드럽게 통과시키고 어느 정도 습도를 조절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문짝과 문틀이 완벽하게 밀폐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나무는 계절과 습도에 따라 조금씩 뒤틀릴 수 있었고, 오래 사용하면 틈도 생겼다. 특히 겨울철에는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기 쉬웠다. 그 틈을 막기 위해 종이를 길게 잘라 가장자리에 붙였고, 이것이 문풍지였다.

 

문풍지는 매우 단순한 물건이지만 체감 효과는 분명했다. 바람이 직접 들어오는 틈을 막으면 실내의 찬 기운이 줄어들고, 같은 양의 난방을 하더라도 방 안의 온기가 더 오래 유지됐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일종의 기밀성 보완 작업에 가까웠다. 창호 성능을 높이는 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생활형 단열이었다.

 

문풍지를 붙이는 일은 겨울 준비의 한 과정이었다. 김장을 하고 연탄을 쌓아두는 것처럼, 집안 곳곳의 찬바람이 드는 자리를 살펴보는 일도 추운 계절을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문풍지는 한 번 붙여두면 겨울 내내 버티기도 했지만 자주 열고 닫는 방문이나 창문에서는 쉽게 찢어지고 들뜨기도 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났고, 찢어진 부분이 생기면 다시 풀을 발라 덧붙였다.

 

국립국어원 자료에서도 ‘문풍지 소리’, ‘문풍지가 찢어지다’, ‘문풍지를 붙이다’ 같은 표현이 실제 생활어로 제시돼 있다. 이 말들이 자연스럽게 쓰였다는 것 자체가 문풍지가 한때 얼마나 흔한 생활용품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문풍지와 함께 비닐도 많이 사용됐다. 오래된 창문 전체에 투명 비닐을 덧대 바람을 막고, 못이나 압정으로 가장자리를 고정하는 방식이다. 바깥 풍경은 조금 흐릿해졌지만 찬 공기를 막는 효과는 컸다. 창문 틈에는 솜이나 헌 천을 끼워 넣기도 했고, 두꺼운 커튼을 달아 냉기를 막기도 했다. 겨울이면 집 전체가 일종의 임시 단열공사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특히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연립주택, 기와집에서는 이런 준비가 더 중요했다. 보일러를 세게 틀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연탄이나 석유 같은 난방연료 역시 아껴 써야 했다. 연탄 한 장이라도 오래 태우려면 방 안의 열을 최대한 밖으로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문풍지 몇 장은 아주 값싼 물건이었지만 난방비를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생활도구였다.

 

그 시절에는 난방이 집 전체를 균일하게 데우는 방식도 아니었다. 아랫목은 뜨겁고 윗목은 차가운 온도 차이가 흔했고, 자는 동안에도 두꺼운 이불을 여러 겹 덮었다. 창 가까이에 자면 냉기가 심해 자리를 피했고,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에 성에가 낀 모습을 보기도 했다. 유리 안쪽에 얼음꽃처럼 서리가 생기는 것은 실내외 온도 차이와 낮은 단열성능이 만든 겨울 풍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문풍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집 안의 따뜻한 공기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에 가까웠다.

 

문풍지를 붙이고 비닐을 치던 겨울 풍경도 하나의 생활문화였다

문풍지는 기능만 놓고 보면 매우 실용적인 물건이지만, 그 주변에는 겨울철 집안일과 가족의 기억도 함께 쌓여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문틈을 하나씩 확인했고, 아이들은 옆에서 종이를 잘라주거나 풀을 건네기도 했다. 잘못 붙이면 종이가 울거나 삐뚤어졌고, 문을 열었다 닫는 과정에서 금방 떨어지기도 했다.

 

문풍지를 붙일 때는 틈을 완전히 막으면서도 문이 움직일 수 있도록 위치를 잘 맞춰야 했다. 너무 안쪽에 붙이면 문을 여닫을 때 걸리고, 너무 바깥에 붙이면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종이를 얇게 접거나 여러 겹 덧붙이는 방식도 집집마다 달랐다. 전통적인 창호지와 비슷한 종이를 사용하기도 했고, 시대가 지나면서 비닐이나 천 재질의 문풍지 제품도 등장했다.

 

문풍지가 흔했던 것은 단순히 옛날 집이 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건축기술과 자재의 한계도 컸다. 과거의 창호는 오늘날처럼 공장에서 규격화된 정밀 부품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적었고, 현장에서 목수가 직접 문과 창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뒤틀리거나 수축하면서 틈이 생길 수 있었다. 알루미늄 새시가 보급된 이후에도 초기 제품들은 지금의 고성능 시스템창호처럼 밀폐성과 단열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창문 자체를 한 번 더 덧대는 ‘이중창’ 방식도 점차 중요해졌다. 바깥창과 안쪽창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면 한 겹짜리 창보다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주택 단열 성능을 높이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창호 개선이다. 국토연구원 자료에서도 단열 성능을 높이는 방법으로 기존 창 안쪽에 이중창을 설치하거나 겹유리로 교체하는 방식이 제시된다.

 

하지만 창호를 통째로 바꾸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공사였다. 모든 가정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문풍지는 값이 싸고 누구나 직접 붙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집일수록 겨울마다 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문풍지에는 소리도 있었다. 바람이 강한 날이면 종이가 떨리며 ‘파르르’ 소리를 냈고, 그 소리를 듣고 밖에 바람이 얼마나 센지 짐작하기도 했다. 실제 국립국어원 사전 예문에도 문풍지 소리가 강하면 바깥바람이 센 것 같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지금은 창문을 닫으면 바깥의 바람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 집이 많지만, 예전에는 날씨가 집 안까지 직접 느껴졌다.

 

겨울철 집안의 풍경도 지금과 달랐다. 창문 아래에는 찬 공기가 내려앉았고, 가족들은 두꺼운 내복과 양말을 입고 생활했다. 문틈에는 문풍지가 붙어 있고, 창에는 비닐이 덧대어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두꺼운 이불이나 방석을 깔았다. 창밖은 볼 수 있어도 비닐이 팽팽하게 덮여 있어 겨울 동안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집도 있었다.

 

문풍지를 붙이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거리도 아니었다. 너무 당연한 집안일이었다. 빨래를 널고 연탄을 갈고 김장을 하듯 겨울이 오면 하는 준비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누구도 몇십 년 뒤 문풍지가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문풍지는 그 시대 주거환경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생활자료다. 집의 성능이 충분하지 않으면 주민이 자신의 손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창문이 춥다면 종이를 붙이고, 더 추우면 비닐을 치고, 그래도 바람이 들어오면 천을 끼워 넣었다. 집을 사용하는 사람이 직접 작은 수선을 하며 계절에 적응했다.

 

이중창과 단열기술이 발달하자 문풍지는 필요 없는 물건이 되었다

문풍지가 점차 사라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택 자체가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아파트와 현대식 주택이 빠르게 보급됐고, 창호와 단열기술도 계속 발전했다. 알루미늄 새시와 PVC 창호가 널리 사용되면서 나무문보다 틈이 적어졌고, 고무 패킹과 정밀한 잠금장치가 바람이 들어오는 틈을 막아주기 시작했다.

 

한 겹의 유리창 대신 이중창과 복층유리도 일반화됐다. 유리와 유리 사이의 공기층이 열의 이동을 줄이면서 겨울철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바깥의 냉기도 덜 전달되게 했다. 오늘날 주택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과정에서도 창호 교체와 단열공사는 핵심적인 개선 항목으로 다뤄진다. LH의 주거급여 수선지원에서도 열효율 개선을 위한 중보수의 대표적인 예로 ‘창호·단열·난방공사’를 제시하고 있다.

 

난방방식도 달라졌다. 연탄 아궁이나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불씨를 관리하면서 난방을 조절해야 했지만,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 지역난방이 보급되면서 실내온도를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랫목만 뜨겁고 윗목은 차가운 형태에서 집 전체를 비교적 일정하게 난방하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아파트 생활은 이런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공동주택은 처음부터 일정한 단열과 창호 기준에 따라 건설됐고, 오래된 아파트도 리모델링이나 창호교체를 통해 성능을 높였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종이가 펄럭일 만큼 바람이 들어오는 상황 자체가 점점 드물어졌다.

 

생활용품도 발전했다. 종이 문풍지를 직접 잘라 붙이는 대신 접착식 스펀지, 고무 패킹, 틈막이 테이프 같은 제품이 등장했다. 지금도 오래된 창문이나 현관문에 이런 제품을 사용하는 집은 있지만, 과거처럼 겨울마다 종이를 풀로 붙이는 방식은 거의 사라졌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에도 ‘문풍지’라는 말 자체는 남아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제품은 종이가 아니라 고무나 스펀지인데도 창이나 문틈을 막는 물건을 여전히 문풍지라고 부른다. 원래는 종이를 뜻했던 이름이 기능을 뜻하는 말처럼 남은 셈이다. 국립국어원의 기본 정의는 여전히 ‘문짝 가장자리에 붙이는 종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다양한 틈막이 제품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넓게 쓰인다.

 

문풍지가 사라진 것은 단순히 더 좋은 접착테이프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집이라는 공간의 기본 성능이 달라진 결과다. 과거에는 집의 부족한 단열을 거주자가 매년 손으로 보완해야 했다면, 오늘날에는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단계부터 단열과 기밀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 변화는 상당히 크다. 예전에는 겨울이 오면 가족이 직접 집을 ‘겨울용’으로 바꾸어야 했다. 창문에 비닐을 붙이고 문풍지를 바르며 연탄을 준비했다. 봄이 오면 다시 떼어내고 창을 열었다. 계절에 따라 집의 모습이 달라졌다.

 

오늘날의 아파트는 계절이 바뀌어도 겉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여름이 오면 에어컨을 켠다. 생활환경을 기계와 건축설비가 조절하면서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준비는 크게 줄었다.

 

물론 오래된 주택에서는 여전히 틈바람이 문제다. 지금도 겨울철이면 현관문 아래나 오래된 창틀에 틈막이 제품을 붙이고, 창문에 단열필름이나 에어캡을 사용하는 가정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문풍지의 기능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료와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얇은 종이 문풍지는 이제 거의 보기 어렵다.

 

바람이 부는 날 문풍지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던 밤, 창문에 하얗게 낀 성에를 손가락으로 긁어 그림을 그리던 아침, 찢어진 문풍지를 어른이 다시 붙이던 모습도 함께 멀어졌다.

 

문풍지가 사라진 것은 우리 집이 예전보다 훨씬 따뜻해졌다는 증거다. 동시에 집을 유지하는 방식이 사람의 손에서 건축기술과 기계설비로 옮겨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찬바람이 들어오면 문풍지를 붙였다. 여전히 춥다면 창에 비닐을 쳤고, 밤에는 두꺼운 이불을 한 겹 더 꺼냈다.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그때마다 집을 조금씩 손봤다.

 

지금 우리는 겨울이 되어도 창문에 무언가를 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창을 닫고 보일러를 켜면 된다.

 

생활은 분명 훨씬 편리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집의 문짝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누렇게 바랜 종이 자국을 보면, 아주 작은 물건 하나가 한 시대의 겨울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 알 수 있다.

 

문풍지는 얇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그 종이는 가족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직접 집의 틈을 메우던 흔적이었다.

 

겨울마다 문풍지를 새로 붙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추위에 적응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람에 파르르 떨리던 문풍지의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전 세대가 종이 한 장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내던 생활의 기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