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주택가 골목에서는 지금은 듣기 어려운 독특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손수레나 자전거, 작은 트럭을 끌고 천천히 골목을 돌면서 “고물 삽니다!”, “헌 신문, 고철 삽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집 안에 쌓아둔 신문지나 빈 병, 고장 난 냄비와 양은그릇, 철제 가구, 오래된 전자제품이 있으면 주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어떤 집에서는 몇 달 동안 모아놓은 신문을 노끈으로 묶어 내놓았고, 어떤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프라이팬이나 고철을 들고 나왔다. 고물장수는 물건의 종류와 무게를 살펴본 뒤 적은 돈을 건네거나 다른 생활용품과 바꾸어주기도 했다. 지금처럼 아파트마다 종이와 플라스틱, 캔, 유리병을 버리는 분리수거장이 있고 정해진 날짜에 재활용품 수거차량이 찾아오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시 자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에는 이런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물장수’라는 말은 조금 낡고 낮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들이 모았던 물건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종이는 다시 종이 원료가 될 수 있었고, 고철과 비철금속은 녹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유리병 역시 다시 쓰거나 원료로 재활용할 가치가 있었다. 물건 하나하나의 경제적 가치는 작았지만 수십 집, 수백 집을 돌며 모으면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고물장수는 가정에서 버려지는 물건을 모아 고물상이나 재활용 업체에 넘기고 그 차액으로 생활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도시 곳곳에 흩어진 소규모 재활용 자원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거하는 민간 재활용업자에 가까웠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골목을 걸으면서 “고물 삽니다”라는 외침을 듣기는 쉽지 않다. 고물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폐지를 모으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람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재활용품을 사들이던 풍경은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버리기 전에 값을 따져보던 시절, 고물도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과거에는 물건을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사용했다. 냄비에 구멍이 나면 고쳐 쓰고, 유리병은 씻어서 다른 것을 담는 데 사용했다. 옷이 해지면 기워 입었고, 신문지도 한 번 읽고 바로 버리지 않았다. 바닥에 깔거나 창문을 닦고, 이사할 때 그릇을 싸는 데 사용한 뒤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모아두었다. 물건 자체가 귀했고 새것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지금보다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히 사용할 수 없게 된 물건이라도 “이걸 그냥 버려야 하나, 고물로 팔 수 있나”를 한 번쯤 생각했다.
고물장수가 주로 사들인 것은 경제적 가치가 남아 있는 물건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철이었다. 못 쓰게 된 냄비와 철제대야, 자전거 부품, 철사, 각종 공구처럼 금속으로 된 물건은 다시 녹여 원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구리와 황동, 알루미늄처럼 철보다 단가가 높은 금속은 종류를 따로 구분해 거래하기도 했다. 전선 속 구리나 오래된 기계 부품도 가치 있는 고물이었다.
헌 신문과 책, 종이상자 역시 중요한 품목이었다. 종이는 부피가 크지만 꾸준히 모으면 상당한 양이 된다. 집에서는 신문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모은 뒤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두었고 고물장수가 골목에 나타나면 한꺼번에 내놓았다. 어린아이들이 용돈을 만들기 위해 집에 있는 헌 신문과 잡지를 모아 고물상에 직접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폐지를 팔아 받은 돈으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빈 병도 돈이었다. 지금도 일부 주류와 음료 용기에는 빈용기 보증금 제도가 있지만 과거에는 유리병의 재사용 가치가 더욱 익숙하게 받아들여졌다. 우유병과 음료병, 술병을 함부로 깨뜨려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가게나 수집상에게 돌려주는 문화가 있었다. 병 자체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고물장수의 이동수단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커다란 손수레다. 손수레 위에는 골판지와 고철, 오래된 가전제품이 위태롭게 높이 쌓였다. 자전거 뒤에 작은 수레를 연결해 다니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삼륜차나 작은 트럭을 이용하는 사람도 늘었다. 골목이 좁은 동네에서는 큰 차량보다 손수레가 훨씬 유용했다. 집집마다 천천히 이동하며 무엇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물장수에게는 경험도 필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금속이라도 재질에 따라 가격이 달랐고, 물건에서 가치 있는 부품만 분리해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장 난 선풍기나 라디오를 통째로 가져가더라도 내부에는 모터와 전선, 금속 부품이 들어 있었다. 고물상에서는 수집된 물건을 다시 종류별로 분류하고 더 큰 재활용업체나 원료업체에 넘겼다. 환경부가 2006년 전국의 신고 대상이 아닌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조사했을 때 7,282개소가 확인될 정도로, 고물상과 재활용품 수집업은 전국 곳곳에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다.
따라서 과거의 고물장수는 도시의 비공식적인 재활용망 가운데 한 축이었다. 오늘처럼 지자체와 공동주택 관리사무소가 재활용품을 체계적으로 수거하기 전에도 종이와 고철, 병 같은 자원이 쓰레기더미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돈이 되는 물건으로 바라보고 수거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도 고물장수는 나쁘지 않은 존재였다. 버리기 곤란한 무거운 물건을 가져가 주었고, 작은 금액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냄비와 고철 몇 개를 내놓고 받은 돈은 크지 않았지만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물장수가 골목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잠깐만요!” 하고 불러 세운 뒤 집 안에 묵혀 있던 물건을 들고 나오는 일이 자연스러운 생활풍경이었다.
“이것도 가져가요?” 쓰레기와 자원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
고물장수의 일은 단순히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었다. 손님이 내놓은 모든 것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종이나 금속처럼 재판매할 수 있는 물건은 가치가 있었지만 재활용하기 어렵거나 처리비가 더 많이 드는 물건은 가져가도 손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민과 고물장수 사이에는 “이것도 가져가느냐”는 대화가 자주 오갔다. 오래된 냉장고나 텔레비전처럼 크고 무거운 제품은 안에 금속 부품이 있지만 분해와 운반에 많은 힘이 필요했다. 가구는 부피가 큰 데 비해 재활용 가치가 낮아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구리선이나 황동 같은 금속이 들어간 물건은 작은 양이라도 비교적 가치가 높았다.
고물장수는 이렇게 여러 집에서 모은 물건을 고물상에 넘겼다. 고물상 마당에는 폐지와 고철, 빈 병, 각종 금속과 폐가전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계근대나 저울로 무게를 달아 가격을 계산했고, 다시 종류별로 분류된 자원은 더 큰 재활용업체로 이동했다. 누군가의 집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물건이 이곳에서는 원료로 거래됐다.
오늘날에는 ‘자원순환’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과거의 고물상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용이 끝난 물건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을 골라 다시 산업의 원료로 보내는 일이었다. 지금도 환경당국은 허가나 신고 없이 영업할 수 있는 일정 범위의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으며, 고물상은 여전히 재활용품 유통체계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고물장수의 존재는 당시 도시의 쓰레기 처리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모든 가정이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하고 정해진 봉투에 담아 버리는 체계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활쓰레기와 재활용품의 구분이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값이 나가는 물건을 먼저 골라내는 일이 중요했다. 종이와 고철은 돈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로 모였고, 이것을 수집해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고물 수집은 생계수단이 되기도 했다. 특별한 자본이나 사업장이 없어도 손수레 하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고, 하루 동안 모은 폐지와 금속을 팔아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매우 힘든 일이었다. 온종일 골목을 걸어야 했고, 무거운 짐을 직접 실어야 했다. 물건의 시세에 따라 하루 수입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비와 눈, 더위와 추위에도 일을 해야 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이어져 있다. 현재는 예전처럼 집집마다 고물을 ‘구입’하는 방식보다 골목과 공동주택에 나온 폐지나 재활용품을 모아 고물상에 판매하는 방식이 더 눈에 띈다. 수집하는 물건과 방식은 달라졌지만 작은 단위의 재활용품을 모아 판매해 생계를 보탠다는 구조에는 연속성이 있다.
다만 과거의 고물장수에 대한 기억을 낭만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무거운 물건을 장시간 옮기는 고된 노동이었고 안정적인 소득도 보장되지 않았다. 고물상 주변에는 재활용품이 대량으로 쌓이면서 먼지와 소음, 화재 위험, 무단소각이나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환경부가 2000년대 중반 미신고 재활용품 수집업체에 대한 관리지침을 마련한 이유 역시 일부 사업장에서 폐기물 보관과 처리 과정의 환경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물장수가 맡았던 역할 자체는 분명했다. 도시 곳곳에서 매우 작은 양으로 발생하는 종이와 금속을 한곳으로 모으는 일이었다. 한 집에서 나오는 신문 몇 묶음은 산업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수백 집에서 나온 것을 합치면 트럭 한 대 분량이 된다. 고물장수는 작은 자원을 큰 흐름으로 연결하는 사람이었다.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자리 잡자 고물장수의 외침도 줄어들었다
골목을 돌아다니던 고물장수의 모습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쓰레기와 재활용품 수거 체계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가 1995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였다. 종량제는 버리는 쓰레기의 양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로, 생활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것이 핵심 목적이었다. 환경부는 1995년부터 전국적으로 운영된 종량제가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고 재활용 자원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일반쓰레기와 섞어 버리는 것보다 따로 분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종이와 캔, 병, 플라스틱 등을 재활용품으로 분리하면 종량제 봉투 사용량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분리배출하는 생활이 빠르게 자리 잡았고, 지자체와 공동주택에서는 정기적으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환경부도 1995년 종량제 시행 이후 생활계의 분리수거 문화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됐다고 평가했다.
아파트의 증가는 이러한 변화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아파트 단지에는 종이와 유리, 캔, 플라스틱 등을 종류별로 버리는 공간이 마련됐다. 주민은 고물장수가 지나갈 때까지 신문과 병을 집에 쌓아둘 필요가 없어졌다. 정해진 날에 재활용품을 내려놓으면 관리사무소나 계약업체가 한꺼번에 수거했다.
대형 폐가전을 처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냉장고와 세탁기, 텔레비전 같은 제품은 제조사나 지자체의 회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새 제품을 구입할 때 기존 제품을 가져가 주는 서비스도 보편화됐다. 무거운 가전을 언제 올지 모르는 고물장수에게 부탁해야 할 필요가 크게 줄었다.
빈 병 역시 공식적인 회수체계를 통해 돌아간다. 종이와 금속은 단지의 재활용업체가 수거하고, 헌옷은 의류수거함에 넣는다. 중고로 판매할 가치가 있는 물건은 인터넷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다. 과거 한 사람이 골목을 돌며 처리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각각 다른 전문 시스템으로 분리된 셈이다.
사람들의 물건 처분 방식도 변했다. 예전에는 낡은 선풍기 한 대라도 고물장수가 가져갈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중고로 판매할 수 있으면 거래 앱에 올리고, 가치가 없으면 폐기물 신고를 하거나 재활용품으로 배출한다. 소비자와 재활용업체 사이의 연결을 고물장수가 직접 담당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도시의 구조도 달라졌다. 단독주택이 밀집했던 골목은 재개발을 거쳐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공동현관과 지하주차장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는 외부인이 손수레를 끌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어려운 공간이다. 예전의 고물장수는 골목길에서 큰소리를 내면 여러 집이 동시에 들을 수 있었지만 고층 아파트에서는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소음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다. 과거에는 두부장수나 찹쌀떡 장수, 엿장수, 고물장수의 외침이 골목의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생활과 판매가 거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거지역에서는 확성기를 사용해 물건을 사거나 판매하는 차량의 소리를 불편하게 느끼는 주민도 많다. 주거가 더욱 사적이고 조용한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거리에서 큰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판매방식 자체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고물상과 재활용품 수집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분리배출한 종이와 캔, 고철 역시 여러 수집·선별·재활용업체를 거쳐 새로운 원료가 된다. 환경부가 고물상 등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 업종이 지금도 자원순환 체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재활용의 첫 단계가 손수레를 끌고 골목으로 찾아왔다. 오늘날에는 주민이 직접 재활용품을 분리수거장으로 가져간다. 고물장수의 손수레가 담당했던 집 앞 수거가 아파트의 재활용장과 수거차량, 전문 선별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물장수의 외침이 사라진 과정은 우리나라의 쓰레기 처리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과거에는 돈이 되는 물건을 개인이 골라내고, 그것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이후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배출이 제도화되면서 재활용은 특정 사람의 경제활동을 넘어 모든 가정이 참여해야 하는 생활규칙이 됐다.
그 결과 우리는 훨씬 체계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갖게 됐다. 하지만 골목의 풍경은 조금 조용해졌다.
“헌 신문 삽니다.”
“고물 삽니다.”
멀리서 그 외침이 들리면 집 안에 있던 사람이 신문 묶음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고물장수는 손수레 위에 그것을 올리고 작은 돈을 건넨 뒤 다시 다음 골목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신문을 묶어 누군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내려놓으면 되고, 오래된 가전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수거를 신청할 수 있다. 훨씬 편리하고 체계적이다.
그러나 골목을 돌던 고물장수가 보여주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남아 있다. 우리가 오늘날 새롭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재활용’과 ‘자원순환’이 사실 전혀 새로운 생활방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건이 귀했던 시절 사람들은 쓸모가 끝난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넘겼고, 다른 제품의 원료가 될 수 있다면 고물로 팔았다. 당시에는 환경을 보호한다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물건이 다시 사용되고 다시 자원이 됐다.
골목을 돌아다니던 고물장수는 바로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손수레 가득 쌓인 헌 신문과 찌그러진 냄비, 낡은 자전거와 고장 난 선풍기는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고물장수의 손을 거치면 그것은 다시 값을 가진 자원이 되었다.
오늘날 그 외침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골목 한쪽에는 분리수거함이 생겼고, 커다란 수거차량이 정해진 시간에 재활용품을 가져간다.
사라진 것은 재활용이 아니라 재활용을 하던 사람과 풍경이다.
“고물 삽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골목은 더 조용하고 체계적으로 변했지만, 그 외침은 한때 물건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고 다시 쓸 방법을 찾았던 생활문화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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