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나 설을 하루이틀 앞둔 예전 집의 부엌은 평소와 전혀 다른 공간이 되곤 했다. 커다란 그릇과 채반이 줄지어 놓이고,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던 넓은 프라이팬과 전기팬이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밀가루와 달걀물이 준비되고 다른 쪽에서는 동그랑땡을 빚거나 꼬치에 재료를 하나씩 끼웠다. 추석이라면 쌀가루 반죽과 깨·콩·밤 같은 송편 소도 빠질 수 없었다. 어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 앉아 제각각 생긴 송편을 만들었고, 막 부쳐낸 전을 하나씩 집어먹다 혼이 나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가 집 안에 배고 냉장고에는 완성된 음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큰 그릇과 쟁반이 베란다까지 나가기도 했다. 명절음식은 먹는 시간보다 만드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요즘 명절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시장의 전집에서는 명절을 앞두고 예약을 받고, 반찬가게와 백화점·대형마트에서는 전과 나물, 갈비찜 등을 세트로 판매한다. 송편도 직접 쌀을 불리고 방앗간에서 가루를 빻아 반죽하기보다 떡집에서 필요한 만큼 주문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차례상에 필요한 음식 전체를 포장해 배송해주는 서비스까지 찾을 수 있다. 어떤 집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음식만 직접 만들고 나머지는 구매하며, 아예 차례를 간소화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송편과 전이 명절음식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추석이면 송편을 먹고, 설이나 추석 상에는 각종 전이 오른다. 달라진 것은 음식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드느냐’다. 한때 집 안에서 가족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던 음식이 이제는 시장과 식당, 식품업체에서 돈을 주고 구입하는 음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명절마다 직접 만들던 송편과 전은 왜 점점 ‘주문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명절음식은 원래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는 큰일이었다
추석 송편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송편은 추석에 햅쌀로 빚어 먹는 대표적인 명절음식으로,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을 조상에게 올리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송편에 관한 기록은 17세기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와 모양도 다양했다. 서울에서는 비교적 작고 예쁜 꽃송편과 오색송편을 만들었고, 강원도와 충청도 등에서는 감자송편이나 도토리송편처럼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하기도 했다.
송편을 직접 만드는 과정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갔다. 쌀을 씻어 충분히 불린 다음 방앗간에서 가루를 빻고, 뜨거운 물로 익반죽한 뒤 안에 넣을 소를 따로 준비해야 했다. 깨에는 설탕이나 꿀을 넣고, 콩이나 팥도 손질했다. 반죽을 조금 떼어 소를 넣고 입구를 오므린 뒤 하나씩 모양을 빚어야 했으며, 완성된 송편은 솔잎을 사이사이에 깔아 쪘다. 가족 수가 많고 친척까지 함께 먹으려면 만들어야 할 양도 적지 않았다. 한두 사람이 몇십 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오랫동안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그랑땡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고기와 채소를 다지고 간을 한 뒤 일정한 크기로 빚어야 했고, 밀가루와 달걀물을 묻혀 하나씩 부쳐야 했다. 동태전은 생선을 손질하고 물기를 제거해야 했으며, 꼬치전은 여러 재료를 비슷한 크기로 썰어 하나씩 끼워야 했다. 산적이나 각종 나물, 잡채와 갈비까지 준비한다면 명절 전날 하루를 거의 부엌에서 보내는 집도 드물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추석 자료에도 송편뿐 아니라 화양적과 누름적 등 여러 음식을 명절에 마련했던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과거에는 이런 노동을 가족이 직접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가족 규모가 지금보다 컸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많았고 먹는 사람도 많았다. 친척들이 한집에 모이면 며느리와 딸, 어머니와 할머니가 각자 일을 나눠 맡았다. 한 사람은 채소를 썰고 한 사람은 전을 부쳤으며 다른 사람은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도 송편을 빚거나 재료를 옮기며 작은 일을 맡았다. 물론 모든 가족이 공평하게 나눠 일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 명절음식 준비는 오랫동안 여성에게 집중된 대표적인 가사노동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이었지만 그것을 만드는 책임은 주로 어머니와 며느리, 딸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옛 명절에 대한 기억에는 두 가지 모습이 함께 존재한다. 아이에게는 온 친척이 모여 송편을 빚고 막 부친 전을 먹던 즐거운 날이었지만, 음식을 책임진 사람에게는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며 명절이 끝난 뒤까지 설거지를 해야 하는 고된 시간이기도 했다. ‘명절음식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관습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가사노동이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직접 만든 음식에는 한 집의 특징이 있었다. 어떤 집은 송편에 깨를 많이 넣었고, 어떤 집은 콩을 넣었다. 동그랑땡에 두부를 많이 넣는 집도 있었고, 고기를 많이 넣는 집도 있었다. 차례상에 올리는 전의 종류와 음식 순서도 집안마다 조금씩 달랐다.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기보다 어머니가 하던 방법을 딸과 며느리가 보고 배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명절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집안의 조리법과 기억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가족은 작아지고 시간은 부족해지면서 ‘직접 만드는 명절’이 부담이 되었다
명절음식이 점차 주문하는 음식으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형태와 시간 사용 방식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거나 형제자매가 많은 가족이 흔했지만 오늘날에는 가족 규모가 크게 줄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전체 가구 가운데 1인 가구의 비중은 35.5%에 이르렀다. 전국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혼자 사는 셈이다. 가족 다섯 명, 여섯 명이 함께 살던 시절과 달리 한두 명이 생활하는 가정에서 송편 수십 개를 만들고 여러 종류의 전을 대량으로 부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맞벌이 가구의 증가도 빼놓을 수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2022년 유배우 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 비중은 46.1%로 당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30~50대에서는 절반을 넘는 연령대가 많았다. 평일에 두 사람이 모두 일하는 가정이라면 명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하루 종일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렵게 얻은 연휴를 전을 부치고 설거지하는 데 대부분 사용하는 대신 필요한 음식은 구입하고 가족과 쉬는 시간을 늘리려는 선택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역시 명절문화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가족 내 가사와 음식 준비를 여성의 역할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느리들이 시댁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남성들은 다른 일을 하거나 쉬는 풍경이 흔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일반화되고 가사노동의 공평한 분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명절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하루 종일 부엌에 있어야 한다’는 관습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늘었다.
명절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사람들이 요리를 못하게 됐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오히려 가사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을 돈을 주고 외부 서비스로 바꾸는 선택에 가깝다. 직접 송편을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린다면 떡집에서 송편을 구매하고 그 시간에 가족과 외출하거나 쉬는 것이다. 전을 열 종류 부치는 대신 시장에서 필요한 종류만 조금씩 구입하면 음식물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먹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 것도 중요하다. 과거 명절에는 많은 친척이 한집에 모여 며칠 동안 머무르기도 했기 때문에 음식을 대량으로 준비할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그릇에 잡채를 만들고 전을 채반 가득 부쳐두어도 여러 사람이 몇 끼를 먹으면 금방 줄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명절 당일 잠깐 만나 식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이 많다. 많은 음식을 만들어두면 연휴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같은 전과 나물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차례문화가 달라진 것도 영향을 준다. 과거의 추석은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에게 올리는 의례적 의미가 강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도 추석 차례는 그해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천신의 의미가 크며 송편과 햅쌀, 토란국 등을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과거와 동일한 규모의 차례상을 차리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종교와 가치관에 따라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지내지 않는 집도 있고, 전통적인 상차림보다 가족이 실제로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아파트 생활도 영향을 미쳤다. 좁은 주방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기란 쉽지 않다. 전을 몇 시간씩 부치면 냄새와 연기가 집 안에 오래 남고 기름이 주변에 튄다. 과거 넓은 마당이나 대가족 주택에서 여러 사람이 나눠 하던 일을 아파트 주방에서 한두 사람이 모두 해야 한다면 체감되는 노동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명절음식을 주문하는 문화는 ‘요즘 사람들이 편한 것만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가족 수가 줄고, 맞벌이가 늘고, 명절에 모이는 시간도 짧아졌으며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까지 달라졌다. 직접 만드는 것이 당연했던 환경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직접 만들던 음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명절음식을 판매하는 시장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예전에도 떡집에서 송편을 사거나 시장에서 전을 구입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이제는 선택지가 훨씬 다양하다. 동네 반찬가게에서는 명절 전 종류를 예약받고, 전통시장에서도 동태전과 동그랑땡, 꼬치전 등을 원하는 양만큼 살 수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여러 종류의 명절음식을 세트로 판매하고 온라인에서는 냉장·냉동 상태의 송편과 전, 갈비찜, 나물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중요한 변화는 소비자가 음식을 ‘전부 만들거나 전부 사는 것’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편은 떡집에서 사고 집에서 잘하는 전만 직접 부치기도 한다. 나물은 반찬가게에서 사고 갈비는 집에서 만들 수 있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라도 노동이 많이 필요한 음식은 주문하고 집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식만 직접 준비한다.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방식이 훨씬 유연해진 것이다.
이것을 전통의 단절이라고만 볼 필요도 없다. 추석에 송편을 먹는 문화 자체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이 설명하듯 송편은 오랜 세월 추석을 대표하는 절식으로 자리 잡아왔고 햅쌀과 여러 소를 사용해 가을의 수확을 나누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직접 빚지 않더라도 추석에 송편을 찾는다는 사실은 음식이 가진 상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게 되면서 과거에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함께 만드는 시간’이 새로운 체험으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이집과 학교에서는 명절을 앞두고 송편 빚기 체험을 하고, 문화시설에서는 전통음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집에서 매년 해야 했던 노동이 이제는 한 번쯤 경험해보는 전통문화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과거에는 송편 빚기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굳이 ‘체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이도 어른 옆에서 자연스럽게 반죽을 받아 송편을 만들었다. 모양이 이상하면 어른들이 웃었고,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 같은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실제로 송편을 예쁘게 빚는 것과 혼인이나 자녀의 복을 연결하는 민간 속설은 오래전부터 전해졌다.
전을 부치던 모습도 그렇다. 부엌에서는 기름이 튀고 더웠지만, 첫 번째로 잘 익은 전을 누군가 몰래 집어먹었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야 할 전의 모양이 망가지면 “이건 우리가 먹자”며 옆에 따로 놓아두기도 했다. 아이가 송편 속을 지나치게 많이 넣어 터뜨리거나 콩을 싫어해 자기 것만 깨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런 기억 때문에 명절음식을 모두 사서 준비한 상을 보면 조금 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음식의 맛 때문이라기보다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던 소리와 냄새,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풍경을 무조건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기억할 필요는 없다.
명절 전날 몇 시간 동안 전을 부치던 사람에게 그 시간은 가족의 추억이기 전에 노동이었다. 다른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엌에서 계속 음식을 만들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를 해야 했다면 명절은 휴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풍경이 누군가의 과도한 노동 위에서 유지된 것은 아니었는지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명절음식을 주문하는 문화는 어쩌면 전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명절을 보내는 방법을 다시 조정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송편을 반드시 집에서 빚어야 추석인 것은 아니다. 떡집에서 산 송편을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어도 추석이고, 전을 시장에서 사와 데워 먹더라도 가족이 같은 식탁에 앉는다면 명절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직접 만들었느냐보다 그 음식을 누구와 나누어 먹느냐일 수도 있다.
돌아보면 과거의 명절은 ‘준비하는 시간’이 매우 긴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쌀을 불리고, 나물을 다듬고, 송편을 빚고, 전을 부쳤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한 음식을 가족과 친척이 모여 며칠 동안 먹었다.
오늘날의 명절은 훨씬 짧고 간편해졌다. 휴대전화로 송편을 주문하고 반찬가게에 전을 예약해두었다가 찾아오면 몇 시간 걸릴 준비가 금방 끝난다.
생활은 분명 편리해졌다.
하지만 명절 전날 집 안 가득 퍼지던 참기름 냄새와 전 부치는 소리, 송편 반죽을 가운데 두고 가족이 둘러앉아 있던 모습은 점점 귀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모두 돌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끔 송편 몇 개를 직접 빚어보거나, 가족이 좋아하는 전 한 가지만 함께 만들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예전처럼 누군가 하루 종일 부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함께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명절마다 직접 만들던 송편과 전이 ‘주문하는 음식’이 된 것은 우리가 전통을 잊어서가 아니다.
가족의 크기가 달라지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가사노동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명절을 준비하는 방법도 달라진 것이다.
한때 명절음식에는 가족의 손맛이 담겼다면, 지금의 명절음식에는 가족의 시간을 아끼려는 선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라져 가는 것은 송편이나 전 자체가 아니라, 명절이 오기 전날 온 가족이 한곳에 둘러앉아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던 풍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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