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주택가 골목이나 시골 마을 사진을 보면 집 앞이나 큰 나무 아래에 널찍한 나무 평상이 놓여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낮에는 할머니들이 앉아 콩을 다듬거나 채소를 손질했고, 해가 지고 더위가 조금 가시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다가 평상 위에 올라와 수박 한 조각을 얻어먹었고, 어른들은 부채질을 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사람이 잠깐 앉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밤늦게까지 머물기도 했다. 누구의 집 거실도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이라면 큰 부담 없이 앉았다 갈 수 있는 공간, 그것이 골목의 평상이었다. 정부의 골목 공동체 관련 사례에서도 골목을 과거의 ‘사랑방’에 비유하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소통하던 공간으로 설명하고 있고, 실제 마을재생 사업에서는 주민 교류를 위해 골목에 접이식 평상을 새로 설치한 사례도 확인된다.
지금도 오래된 마을이나 시골에 가면 평상을 볼 수 있지만 도시의 일반적인 주택가에서는 흔한 풍경이 아니다. 집 앞에는 자동차가 세워져 있고, 골목은 차량이 오가는 통로가 됐다. 아파트에서는 현관문을 열어도 곧바로 복도나 엘리베이터가 나오기 때문에 집 앞에 평상을 놓고 이웃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켜진 집 안에 머물고, 이웃과 이야기하고 싶다면 카페나 식당처럼 별도의 장소에서 약속을 잡는다. 평상이 필요했던 생활환경 자체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때 여름이면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평상은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라졌을까?

에어컨이 없던 여름, 평상은 집 밖에 만든 두 번째 거실이었다
평상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먼저 과거의 여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은 날씨가 더우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가정용 에어컨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집 안보다 집 밖이 더 시원한 경우가 많았다. 한낮에는 햇볕이 뜨거웠지만 해가 지면 골목과 마당에 바람이 돌았고, 콘크리트 벽과 지붕에 남아 있는 열 때문에 답답한 방 안보다 나무 아래나 골목 입구가 오히려 견디기 편했다. 사람들은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들이고, 저녁이면 대문 밖으로 나왔다. 평상은 그렇게 여름을 견디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활공간이었다.
평상은 구조도 단순했다. 나무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널빤지를 넓게 깐 형태가 많았다. 의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었고, 다리를 뻗고 눕거나 밥상을 올려 식사를 하기에도 편했다. 낮에는 빨래나 농산물을 널어놓기도 했고,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작은 식탁이 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으며, 집이 너무 더운 날에는 밤늦게까지 평상에서 바람을 쐬었다.
무엇보다 평상은 ‘앉는 사람을 정하지 않는 가구’에 가까웠다. 대문 안쪽 마당에 있는 평상은 한 집의 것이었지만 골목 쪽에 나와 있으면 이웃도 자연스럽게 이용했다. 집주인이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더운데 여기서 뭐 해?”라고 말을 걸며 옆에 앉았고, 잠깐 앉았던 사람이 다시 다른 이웃을 불렀다. 한두 명으로 시작한 자리가 어느새 여러 사람의 대화 자리로 바뀌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평상은 단순한 휴식용 가구보다 동네의 공동 거실에 가까웠다. 집 안의 거실에 들어가려면 초대를 받아야 하지만 골목의 평상에는 그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지나가다 아는 얼굴이 있으면 잠시 앉으면 됐다. 정부가 마을공동체 사례를 소개하면서 ‘평상’이라는 이름의 주민 공간을 누구나 와서 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설명한 것도 이런 문화적 기억과 맞닿아 있다.
평상 주변에서는 일과 휴식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마늘을 까거나 콩깍지를 벗기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여름이면 옥수수 껍질을 벗기거나 고추를 다듬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반찬거리를 손질하고, 지나가는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지금처럼 ‘일을 하는 공간’, ‘쉬는 공간’,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평상은 골목놀이의 기지 같은 곳이었다.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지치면 평상에 올라가 쉬었고, 어른이 잘라주는 참외나 수박을 얻어먹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가 “이제 들어와 씻어라”고 부를 때까지 골목에서 놀았다. 평상에 앉은 어른 여러 명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집 아이인지 구분하지 않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 한마디씩 하기도 했다.
평상에서는 음식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어느 집에서 옥수수를 삶으면 옆집 사람에게 몇 개 건네고, 수박을 자르면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함께 먹었다. 김치나 반찬 이야기를 하다가 “이것 좀 먹어봐”라며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물건을 주고받고 소식을 나누는 일이 거창한 약속 없이 이루어졌다.
평상은 그래서 당시의 주거환경과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집이 지금보다 좁고 냉방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고, 골목이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생활공간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평상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위에 사람들이 앉으면서 골목은 잠깐씩 동네의 거실이 되었다.
평상에서는 ‘약속하지 않아도 만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평상이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날 사람들이 계속 마주쳤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이웃을 만나려면 일부러 약속하거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쳐야 하지만, 평상이 있던 골목에서는 집 밖에 나오기만 해도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평상에 앉은 사람들은 동네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소식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누가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 어느 집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시장에 어떤 물건이 싸다는 이야기, 동네 수도가 끊긴다는 소식까지 여러 정보가 대화를 통해 퍼졌다. 지금이라면 단체채팅방이나 지역 커뮤니티 앱에서 공유될 정보가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누군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할머니 요즘 안 보이네”라는 말이 나왔고,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웃이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공식적인 복지제도가 대신하지 못했던 작은 돌봄이 이웃관계 안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언제나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많거나, 집안 사정이 동네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운 공동체는 서로 돕는 장점이 있는 만큼 서로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평상은 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인 장소였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골목 가운데 서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지만 앉을 곳이 있으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한 사람이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잠시 머물고, 또 다른 사람이 합류한다. 단순한 나무판 하나가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의 마을재생 사업에서도 이런 원리를 활용한 사례가 있다. 한 골목에는 햇빛과 바람을 고려해 위치를 정한 접이식 평상을 설치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평상이 주민들의 소통을 늘리는 장치로 소개된 점은 평상이 단순한 옛 가구가 아니라 사람을 한자리에 머물게 하는 공간적 장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평상 주변에서는 세대도 자연스럽게 섞였다. 어른들은 평상 위에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그 주변에서 뛰어놀았다. 청소년이 지나가면 어른에게 인사했고, 동네 사람들은 어느 집 아이인지 대체로 알고 있었다. 세대별 생활공간이 지금처럼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른은 카페에 가고 아이는 놀이터나 학원에 가며 청소년은 자신의 방이나 온라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세대가 서로 마주칠 장소가 많지 않다. 하지만 골목과 평상이 생활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단지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혔다.
여름밤 평상은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 공간이었다. 해가 진 뒤 선풍기 바람조차 뜨거운 날에는 이웃들이 평상에 모여 부채질을 했다. 아이들은 모기향 냄새가 나는 주변에서 놀았고, 어른들은 수박이나 미숫가루를 먹었다.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가 흘러나오기도 했고,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한 집의 소식을 함께 듣기도 했다.
누군가 특별히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사람이 모였다. 이것이 평상 문화의 특징이었다. 오늘날에는 주민 교류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민센터에서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생활 자체가 사람을 밖으로 끌어냈다.
평상은 그 사람들이 잠시 머무를 자리를 제공했다.
자동차가 골목을 차지하고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평상도 사라졌다
동네 평상이 줄어든 이유는 사람들이 이웃을 싫어하게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공간의 사용법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 골목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주민이 물건을 내놓고 평상을 펼쳐도 되는 생활공간에 가까웠지만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골목의 중요한 기능이 차량 통행과 주차로 바뀌었다.
평상은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여러 사람이 앉으려면 골목 한쪽을 상당 부분 사용해야 한다. 자동차가 많지 않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차량이 늘어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집 앞의 작은 공간도 주차 한 칸이 되었고, 좁은 골목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워두어야 했다. 실제 서울의 한 마을에서 공유주차 실험과 차량 통제를 진행한 뒤 차가 없어진 골목에서 주민 축제와 운동회를 열 수 있었다는 사례는 자동차와 주민의 생활공간이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줄어든 것도 같은 변화와 연결된다. 자동차가 계속 오가는 골목에서는 어린아이를 마음 놓고 놀게 하기 어렵다. 평상에 앉아 있는 어른 역시 차량이 지날 때마다 비켜야 한다. 결국 골목은 ‘머무는 곳’에서 ‘통과하는 곳’으로 성격이 변했다.
주거형태 변화는 더욱 결정적이었다.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중심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늘어났고, 사람들은 골목 대신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파트는 집 밖의 공간을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구조다. 복도에 평상을 놓을 수도 없고 현관 앞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렵다. 이웃과 만나는 공간은 놀이터와 경로당, 주민시설처럼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장소로 이동했다.
냉방기기의 보급도 평상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집 안이 더워서 밖으로 나왔지만 지금은 밖이 더우면 오히려 에어컨이 켜진 집 안으로 들어간다. 밤에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기다리기보다 실내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야 할 이유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스마트폰 역시 생활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예전에는 저녁을 먹고 할 일이 많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 이웃을 만났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즐길 것이 많다. 영상 콘텐츠를 보고 게임을 하며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가까이 사는 이웃과 직접 이야기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시간을 보낼 방법이 훨씬 많아졌다.
사생활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대문을 열어두고 이웃이 자유롭게 오가던 문화보다 자신의 집과 개인시간을 보호하려는 생활방식이 강해졌다. 옆집 사람의 가족관계나 생활을 자세히 아는 것이 자연스럽던 시대에서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의 관계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래서 평상은 조금씩 자리를 잃었다.
골목 한가운데 있던 평상은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평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에어컨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단독주택은 아파트로 바뀌었고, 대문 앞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던 이웃은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인사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공동체를 완전히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골목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마을공동체 사례에서도 골목을 단순한 길이 아니라 주민이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다시 만들려는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마을기업이 주민 모임공간의 이름을 아예 ‘평상’에서 따온 사례도 있다. 누구나 와서 쉬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평상을 없앤 뒤 다시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무판 몇 장을 이어 만든 평상 하나면 사람들이 모였지만 지금은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와 주민카페, 작은도서관 같은 공간을 별도로 설계한다. 형태는 훨씬 세련되고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만드는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돌아보면 골목의 평상은 값비싼 시설도 특별한 가구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나무판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채소를 다듬고 밥을 먹었으며 낮잠을 자고 아이를 돌봤다.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 소식을 들었으며 수박 한 통을 여러 사람이 나눠 먹었다.
평상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밖에서 생활하고 서로 자주 마주치던 시대였기 때문에 평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평상이 사라진 것은 오래된 가구 하나가 없어진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 밖에서 보내던 시간이 줄어든 변화와 연결된다.
예전에는 여름 저녁이면 집 안보다 골목이 더 북적였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평상에 앉아 있었다. 누가 특별히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봤다.
오늘날에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면서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과 휴대전화로 매일 대화한다. 관계가 사라졌다기보다 관계가 만들어지는 장소와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도 오래된 동네에서 나무 평상 하나를 발견하면 괜히 한번 앉아보고 싶어지는 이유가 있다.
평상은 단순히 쉬기 편한 가구가 아니라 ‘밖에 나가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수박 한 조각을 가운데 놓고 여럿이 나눠 먹던 여름밤, 부채를 흔들며 “오늘도 덥다”고 이야기하던 이웃들, 골목에서 놀던 아이를 여러 집 어른이 함께 바라보던 풍경.
동네 골목의 평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금 자동차가 서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집 안에서 저녁을 보낸다.
우리는 훨씬 시원하고 편안한 집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 약속 없이 문밖으로 나갔다가 이웃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어쩌면 평상은 가구가 아니라 그런 시간을 담아두던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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