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던 시간, 학교 앞에는 문방구와 분식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솜사탕을 만드는 아저씨, 달고나를 굽는 할머니, 장난감과 풍선을 파는 노점상 사이로 작은 상자 하나를 내려놓은 병아리 장수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안에서는 노란 병아리들이 서로의 몸을 밀치며 쉴 새 없이 삐약거렸다. 아이들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병아리들을 바라보았다. 작은 부리와 보드라운 털,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몸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병아리 한 마리의 가격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용돈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몇백 원이나 천 원 정도만 있으면 병아리를 데려갈 수 있었다. 어떤 판매자는 병아리와 함께 작은 종이 상자를 건네주었고, 상자에는 병아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 상자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병아리의 귀여움에 마음을 빼앗겨 아무런 준비 없이 충동적으로 사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설렘과 달리 병아리의 운명은 그리 밝지 않았다. 따뜻한 온도와 적절한 먹이, 깨끗한 물과 충분한 공간이 필요한 어린 생명에게 종이 상자와 아파트 방 한쪽은 적합한 사육 환경이 아니었다. 많은 병아리가 며칠을 넘기지 못했고, 살아남은 병아리도 점점 몸집이 커지면서 도시의 가정에서는 더 이상 키우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한때는 초등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병아리 장수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병아리 장수가 사라진 시점을 정확히 어느 한 해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1990년대까지 여러 지역에서 익숙한 풍경으로 기억되다가 2000년대 이후 학교 주변 환경과 동물에 대한 인식, 관련 제도가 달라지면서 점차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들의 하굣길을 따라다니던 노란 병아리들은 왜 학교 앞에 나타났고, 또 언제부터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일까?

학교 앞에 병아리 장수가 나타난 이유
과거 학교 앞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노점상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는 수백 명의 학생이 짧은 시간 안에 교문 밖으로 나왔다. 학교 앞은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문방구에서는 학용품과 장난감을 팔았고, 노점에서는 떡볶이와 어묵, 번데기, 달고나, 솜사탕 같은 간식을 판매했다.
병아리도 그중 하나였다. 병아리는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살아 있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장난감보다 훨씬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에게는 병아리를 직접 만져보고 품에 안아보는 경험 자체가 특별했다. 작은 생명을 자신이 직접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린아이에게 일종의 책임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병아리는 가격이 저렴했다. 당시 판매되던 병아리는 모두 같은 경로로 공급된 것은 아니었지만, 양계산업의 부화 과정에서 상품성이 낮다고 판단되거나 경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체들이 값싸게 유통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산란계 농장에서 경제성이 낮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처분되기 쉬웠다.
오늘날에는 산란계 산업에서 태어나는 수평아리의 처리 방식 자체가 동물복지 문제로 다뤄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생산 과정이 소비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학교 앞에 놓인 상자 속 병아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까지 도착했는지를 묻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병아리는 그저 귀여운 동물이었다. 노란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집으로 데려가면 작은 그릇에 쌀이나 좁쌀을 담아주고, 상자 바닥에는 신문지나 헝겊을 깔아주었다. 날씨가 춥다고 생각되면 백열전구를 켜주거나 수건을 덮어주기도 했다. 병아리를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가 없었던 아이들은 주변 어른에게 들은 이야기나 자신의 짐작에 의존해 병아리를 돌보았다. 운이 좋으면 병아리는 노란 솜털을 벗고 제법 큰 닭으로 자랐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그대로 키우기도 했고, 시골의 친척 집이나 농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병아리가 닭이 될 때까지 키웠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어린 시절의 특별한 추억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 가정에서는 병아리를 제대로 기르기 어려웠다. 어린 병아리는 체온을 스스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해 적절한 보온이 필요하다. 먹이와 물을 아무렇게나 주어도 되는 동물이 아니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면 질병에 걸릴 위험도 크다. 병아리끼리 너무 밀집해 있거나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지 않아도 건강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 앞 병아리 판매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병아리가 생명체라기보다 어린이를 위한 값싼 구경거리나 일시적인 장난감처럼 취급되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아리를 사는 아이도, 판매하는 어른도 그 행동을 특별히 잔인하거나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명을 판매하고 기르는 일에 지금과 같은 책임이 요구되지 않았던 시대의 풍경이었다.
귀여운 추억 뒤에 가려져 있던 병아리의 짧은 삶
병아리를 샀던 사람들의 기억은 대체로 비슷하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발견하고, 친구들과 상자 앞에 둘러앉아 어떤 병아리가 가장 건강해 보이는지 골랐다. 병아리를 손에 올려놓으면 작은 발이 손바닥을 간질였고, 몸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상자 안에서 들리는 삐약거리는 소리도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다음의 기억은 밝지만은 않다. 병아리가 며칠 만에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거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갑게 굳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흔하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한 순간으로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병아리가 쉽게 죽었던 이유를 단순히 “원래 약한 동물이라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린 병아리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 영양에 맞는 사료, 깨끗한 물과 위생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점에서 판매되는 동안 병아리들은 좁은 상자 안에 밀집해 있었고, 더운 날이나 추운 날에도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병아리를 데려간 뒤의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먹이로 생쌀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주거나, 물에 빠져 몸이 젖을 정도로 깊은 그릇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귀엽다는 이유로 병아리를 계속 손으로 만지고 들었다 내려놓는 행동도 어린 병아리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었다.
병아리가 무사히 성장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작고 귀여웠던 병아리는 빠르게 자라 닭이 된다. 몸집이 커지고 깃털이 자라며, 수탉이라면 이른 아침부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배설물의 양과 냄새도 늘어난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나 빌라에서는 다 자란 닭을 계속 기르기 어렵다. 결국 친척이 사는 시골로 보내거나, 주변 농장에 맡기거나,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누군가에게 넘기는 일이 발생했다. 맡길 곳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병아리나 닭이 버려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학교 앞 병아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주로 아이들의 추억이나 호기심을 중심으로 소비되었고, 판매되는 병아리가 어떤 상태인지, 구매자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동물은 사람이 필요할 때 구매했다가 불편해지면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현재 동물보호법도 동물의 생명 보호와 안전 보장, 복지 증진뿐 아니라 책임 있는 사육문화의 조성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동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질병이나 굶주림 등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동물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과거에는 병아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게 만드는 일이 아이의 안타까운 경험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기준에서는 생명을 데려온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학교 앞 병아리 장수에 대한 기억이 세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천 원으로 살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린 생명이 충분한 설명과 보호 없이 충동적으로 판매되던 풍경이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추억과 불편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병아리 장수가 사라진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병아리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작은 동물을 손쉽게 사고파는 행위를 더 이상 예전처럼 가볍게 볼 수 없게 된 사회적 변화가 그 배경에 있었다.
병아리 장수는 정확히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학교 앞 병아리 장수가 사라진 시점을 어느 특정한 연도나 사건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몇 년부터 병아리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모두 사라졌다”라고 단정할 만한 단순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학교 주변의 모습이 달랐고, 노점 단속의 정도와 판매 관행도 달랐다. 어떤 지역에서는 일찍 사라졌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비교적 오랫동안 병아리를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여러 세대의 기억을 종합하면 1980~1990년대까지는 학교 앞 병아리 장수가 비교적 익숙한 존재였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변화가 겹쳐 있었다.
먼저 학교 주변 환경이 정비되었다. 과거에는 학교 정문 바로 앞이나 통학로 주변에서 다양한 노점상이 영업했다. 하지만 어린이의 안전과 위생을 이유로 학교 주변 노점이 단속되거나 정비되면서 병아리를 비롯한 간식과 장난감을 파는 이동식 판매상도 자리를 잡기 어려워졌다.
두 번째는 아파트 중심의 도시생활이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줄어들고 공동주택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닭을 키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병아리 때는 작은 상자에서도 지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성장한 닭에게는 충분한 활동 공간과 위생적인 사육 환경이 필요하다. 소음과 냄새는 이웃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어린이의 소비문화 변화다. 과거에는 학교 앞 노점이나 문방구가 아이들의 주요 소비 공간이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쇼핑몰, 인터넷 쇼핑, 스마트폰과 온라인게임이 등장하면서 아이들의 관심과 소비 방식도 달라졌다. 살아 있는 병아리를 사서 집으로 데려가는 경험은 점차 낯선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동물 판매와 사육에 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현재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영업은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판매업자는 시설과 인력 기준뿐 아니라 동물 관리와 거래 과정에 관한 의무를 지게 된다. 정부24의 동물판매업 허가 안내에서도 반려동물을 판매하려는 영업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오늘날의 동물판매업 규정을 그대로 과거 학교 앞 병아리 노점에 대입해 “병아리 판매가 모두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동물보호법상 영업 규제의 적용 대상과 동물의 범위, 판매 형태는 구체적인 법령과 시행규칙에 따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아리 장수가 사라진 이유는 하나의 법으로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무허가 노점 영업이 어려워지고 학교 주변이 정비된 데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과 판매업 관리가 강화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현재 동물보호법은 동물판매업자에게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고려한 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동물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생명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이제 아이가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할 때 부모는 먼저 가족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적절한 사육 공간이 있는지,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동물을 구매하는 일도 즉흥적인 선택보다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학교 앞 병아리 장수가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일까, 다행스러운 일일까? 어린 시절 병아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은 분명 따뜻하다. 작은 생명과 처음 교감했던 경험, 먹이와 물을 챙겨주며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을 배웠던 순간도 소중하다. 병아리가 건강한 닭으로 자란 모습을 본 사람에게는 더욱 특별한 추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것과 당시의 판매 방식까지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좁은 상자 속에 병아리를 가득 담아 장시간 노출하고, 키울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판매하던 방식은 오늘날의 생명 존중 기준과 맞지 않는다. 병아리가 며칠 만에 죽거나 성장한 뒤 버려질 가능성이 높았다면,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방법으로도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 앞 병아리 장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학교 앞 노점이 정비되고, 주거 형태가 바뀌고,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달라지고, 동물의 생명과 복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동안 조금씩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졌다. 교문 앞 상자 안에서 들리던 수십 마리 병아리의 삐약거림은 이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풍경이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나은 과거도 있다. 병아리 장수의 빈자리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작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조금은 신중해졌다는 흔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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