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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생활문화26

준비물부터 뽑기까지 다 있던 곳, 학교 앞 문방구는 왜 하나둘 사라졌을까? 예전 학교 앞 풍경을 떠올리면 빼놓기 어려운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문방구다. 등굣길에 공책을 사러 들르고, 쉬는 시간에 필요한 색종이나 준비물을 사기 위해 뛰어가고, 하굣길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뽑기나 작은 장난감을 구경하던 곳. 문방구는 단순히 연필과 지우개를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해결하는 가장 가까운 생활상점이었고, 동시에 적은 용돈으로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친구들과 놀던 작은 문화공간이었다. 가게 앞에는 몇백 원짜리 뽑기 기계가 놓여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캐릭터 지우개와 스티커, 딱지, 미니카, 구슬, 종이인형 같은 물건이 빼곡했다. 조금 더 오래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방구 한편의 오락기나 불량식품이라 불리던 값싼 군것질거리도 떠올릴 것이다.. 2026. 10. 29.
여름밤 이웃들이 둘러앉던 동네 골목의 평상은 왜 사라졌을까? 예전 주택가 골목이나 시골 마을 사진을 보면 집 앞이나 큰 나무 아래에 널찍한 나무 평상이 놓여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낮에는 할머니들이 앉아 콩을 다듬거나 채소를 손질했고, 해가 지고 더위가 조금 가시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다가 평상 위에 올라와 수박 한 조각을 얻어먹었고, 어른들은 부채질을 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사람이 잠깐 앉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밤늦게까지 머물기도 했다. 누구의 집 거실도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이라면 큰 부담 없이 앉았다 갈 수 있는 공간, 그것이 골목의 평상이었다. 정부의 골목 공동체 관련 사례에서도 골목을 과거의 ‘사랑방’에 비유하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소통하던 공간으로 설명하고.. 2026. 10. 27.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들던 명절음식은 왜 ‘주문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추석이나 설을 하루이틀 앞둔 예전 집의 부엌은 평소와 전혀 다른 공간이 되곤 했다. 커다란 그릇과 채반이 줄지어 놓이고,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던 넓은 프라이팬과 전기팬이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밀가루와 달걀물이 준비되고 다른 쪽에서는 동그랑땡을 빚거나 꼬치에 재료를 하나씩 끼웠다. 추석이라면 쌀가루 반죽과 깨·콩·밤 같은 송편 소도 빠질 수 없었다. 어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 앉아 제각각 생긴 송편을 만들었고, 막 부쳐낸 전을 하나씩 집어먹다 혼이 나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가 집 안에 배고 냉장고에는 완성된 음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큰 그릇과 쟁반이 베란다까지 나가기도 했다. 명절음식은 먹는 시간보다 만드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요즘 명절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시.. 2026. 10. 25.
빨간약과 소화제가 가득했던 집안의 작은 병원, 약상자는 왜 예전만큼 보이지 않을까? 예전 집에는 유난히 건드리면 안 되는 상자가 하나쯤 있었다. 안방 장롱 위나 서랍장 깊숙한 곳, 혹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 놓여 있던 약상자다. 뚜껑을 열면 빨간약이라 불리던 소독약, 알약이 들어 있는 작은 병, 소화제, 감기약, 파스, 반창고, 거즈, 체온계와 연고가 한데 들어 있었다. 누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약상자가 열렸고, 밤늦게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나도 가장 먼저 그 상자부터 찾았다. 병원이나 약국에 바로 가기 어려운 시간이라면 집 안에 있는 약으로 먼저 버텨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이었다. 지금도 가정마다 상비약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나 나무상자 하나에 온갖 약을 한꺼번에 모아두고 온 가족이 공유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보인다. 해열진통.. 2026. 10. 12.
딸랑딸랑 종이 울리면 대문을 열던 시절, 골목마다 들리던 두부장수의 종소리는 왜 사라졌을까? 예전 주택가 골목에는 지금은 거의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었다. 멀리서부터 “딸랑딸랑” 작은 종소리가 들려오면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두부장수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손수레나 자전거, 작은 리어카 위에는 갓 만든 두부가 담겨 있었고, 주민들은 냄비나 그릇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오늘 저녁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 한 모, 기름에 노릇하게 부쳐 먹을 두부 몇 모를 그 자리에서 사갔다. 일정한 크기로 자른 두부를 물이 담긴 통에서 꺼내 건네주기도 했고, 지역과 시기에 따라 비지나 묵 같은 다른 식품을 함께 파는 경우도 있었다. 두부는 오래 두고 먹기 어려운 식품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냉장고 안에 며칠씩 보관하거나 마트에서 포장제품을 사두는 생활이 일반.. 2026. 10. 10.
해진 옷도 버리지 않고 고쳐 입던 곳, 동네 수선집은 왜 줄어들었을까? 예전 동네 골목에는 ‘옷수선’, ‘의류수선’, ‘리폼’ 같은 글씨를 내건 작은 가게가 하나쯤 있었다. 가게 안에는 재봉틀과 다리미, 줄자, 실타래, 지퍼와 단추가 빼곡했고, 벽에는 손님이 맡긴 바지와 재킷, 교복, 치마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바짓단이 길면 줄였고, 허리가 맞지 않으면 품을 조절했다. 지퍼가 고장 나면 새것으로 갈았고, 무릎이나 팔꿈치가 해지면 천을 덧대 다시 입을 수 있게 만들었다. 새 옷을 사는 대신 조금 손봐 더 오래 입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 수선집은 동네의 작은 생활기술센터였다. 지금도 의류수선점은 분명 존재한다. 통계지리정보서비스에서도 ‘생활용품수리’와 같은 생활서비스 업종이 여전히 별도 범주로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주택가 골목마다 작은 수선집이 보이는 풍경은 확.. 2026. 9. 28.